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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 참전 수기-항해는 끝나고 제2의 도시 다낭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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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LA교차로
  • 17.01.05 08:57:53
  • 추천 : 0
  • 조회: 21

월남 참전 수기 

-황민수 LA시 재향군인 시장 자문위원-

 

항해는 끝나고 제2의 도시 다낭항에 도착……….

 

항해를 하는 동안 상상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어느 육군 장병이 해병대가 묵고 있는 층에 잘못 찾아와 별의별 기합을 받고 가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던가 하면 ,윗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굴러 떨어져 어깨 다리 머리까지 다쳐서 찾아오는 병사가 있어 밤에도 의무실에 찾아와 깊은 한 밤에 호출을 당한적도 있었다.

 

그런데, 거의 4-5일째가 되든 날 육군 하사관과 우리 해병 사병간에 서로 치고 밖는 사건이 발생했다. 발단은 맹호부대 하사관 한사람이 앞줄로 좀 새치기를 하게 됐는데 앞에 있던 해병 장병이 거의 반말로 야 이 짜식아 줄이 안보여”... 이 하사관은 계급도 아래고 또 몸 둥치도 적은 해병사병에게 넌 계급이 안 보여 이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해병은 어디서 그런 용감성

(?)이 발로했는지 그대로 한방이 날아갔다. 순식간에 식당 입구에서는 몇 몇 해병들이 이 하사관을 짖 밟게 되어 그야말로 식당에서 아수라장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육군장병들은 보고만 있었지 누구하나 말리려고 하지를 않아 이 하사관이 상당히 짓밟히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양쪽의 지휘관 몇 분이 나타나 사건은 무마되긴 했지만, 육군에서는 이날 이후 해병들과

같이 식당가는 것을 꺼리는 사태도 일어났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이 하사관이 의무실로

피가 난 머리 부분과 어깨 부상으로 올라오게 되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좀 미안하기도 하여 그 하사관에게 나도 해병대지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 하사관도 받아들여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 그 사병 한 놈하고만 싸웠으면 실컷 패두었는데 순간적으로 옆에 있던 해병 몇 명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혼이 났다고”..웃으면서 예기를 하는 걸 듣고서 인간적인이 하사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놀라운 것은 사실은 좀 머뭇거리면서 말을 계속한다.,

청룡부대 용사들의 단합과 의리와 명분에 죽고 사는 청룡부대들의 기질에

자기도 놀랬다고한마디 한다. 사실 우리 해병들은 의리에 죽고 사는 그런 정신이 있기때문에

오늘의 해병이 강인한 해병으로 살아남아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치료를 마치고 나갈 때 나는 한마디 건넸다. 나하고 계급이 같아 박하사, 다음에 식사 갈 때는 나하고 같이 갑시다. 나는 몇 층 몇 호실에 있다고 까지 알려주자”. 웃으면서 나갔다.

 

.

며칠간의 태풍이 지나고 나니 다들 좀 화색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긴 항해를 하게 되면 반드시 한번쯤은 상상 못할 태풍이나 폭풍을 접하게 되는데 지나고 나면 언제 태풍이 있었느냐 했듯이 감쪽같이 지나고 너무나 조용한 순항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의 여정과도 같아 항해의 순항이 바로 우리 인생의 여정일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발버둥치고, 삶과 싸워야하는 순수한 우리 인생의

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6일째 되던 날 아침 식사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내 옆에 있던 용사가 박상병이 아닌가? 나는 야 박상병, 반갑다. ” 대답에 앞서 그는 첫 마디에 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건 이미 지난 일이야.”

나는 그 일을 잊는지가 오래 되어서 그래 어디로 발령 났니?”

 바로 이 친구가 나의 월남어 졸업식에서 1등을 가져간 전우다. 나 또한 이해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예기는 하지 않고 어디로 발령이 났냐고 묻자 , 싸이공 주월사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나는 다낭쪽으로 갈 것 같다고만 답했다. 우린 서로 근 4개월 동안의 정이 쌓여 서로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자고 약속을 하면서 아침을 함께 하였다. 우린 서로 깊은 우정의 악수를 다시 나누었다. 그 이후론 싸이공 방문 시에도 만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작전에 투입되어 봉사를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11월말인데도 벌써부터 열대 지방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 며칠 후면 월남땅, 다낭항에 도착하게 된다. 7일간의 항해로 좀 지루하긴 했지만 우리 파병용사를 태운 배는 마침내 다낭항에 먼저 청룡용사들을 하선시키고 며칠 후에는 퀴논(Quihnon) 에 맹호부대 용사들을 하선시키고 다시 며칠을 더 항해후 백마부대가 주둔한 나트랑( Na Trang: 냐짱) 항에 도착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지난 일주일간의 항해 중 미 해군 순항함 승선 후 의무실에서의 봉사는 내 자신에게 큰 자부심과 함께 기쁨이 넘친 시간들로 잊을 수 없는 큰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자유 우방국가인 월남의 자유와 평화, 더 나아가 조국 건설 발전을 위해 전장으로 떠나는

우리 장병들의 모습은 무겁기만 보였다. 며칠간 배안에서 의무실에서 사귀었던 맹호, 백마부대원들과의 막상 해어지려고 하니 아쉬움이 앞섰고 우리 함께 반드시 살아서 개선 용사로 고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다짐을 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게 됐다.

 

다낭항에 도착하자 이미 부두에는 이동령 청룡여단장을 비롯 많은 참모들이 나와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질서 있게 배안에서 줄을 서 있는 동안, 누군가 시작도 없이 청룡은 간다군가를 힘차게 불러대어 우울한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 아래 메아리치는

귀신 잡는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지키려

삼군에 앞장서서 청룡은 간다.”

 

하선 전, 누구를 불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해병가를 부르짖을 때 맹호, 백마부대 용사들도 함께 따라 불러 우리 모든 용사들은 눈시울로 함께 젖었고 배에서 우리 용사들의 끈끈한 정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군인 정신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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