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게시판
  • 하두일칼럼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하두일
  • 16.12.15 08:53:51
  • 추천 : 0
  • 조회: 15

하두일칼럼

 

인간의 본성과 세속적 이해

 

젊은이의 지성(知性)이 분만(分娩)해 내는 사상(思想)을 진통(陣痛)하는 영혼(靈魂)을 간호(看護)하고 그릇된 우상(偶像)의 자손(子孫)인가 아니면 고귀하고 참된 가문인가를 시험하고 우리의 무한(無限)의 가능성에 둘러싸여 유한(有限)의 지성의 목적이 무한으로부터 모든 일의 완전을 택할 것을 취한다면 하늘에 저택(邸宅)을 거절하고 어둠속에서 발광해야 한다. 하지만 위기에는 이점(利點)이 있다. 놀라게와 분발로 격려하니까, 관여(關與)와 힘의 균형이 이루었을 때만 정책은 모든 관계에서 형성이 된다. 어떤 바람()도 순풍이 못되는 것은 항구(港口)가 어데인지 모르는 까닭이다. 가고저하는 그곳으로 데려다 주는 길도 강()인데 말이다. 목적지가 정당화해야 수단이 합법적이 된다. 수단의 열렬히 소망된다면 목적 자체가 재미가 있다. 우리가 만드는 효용(効用)은 무관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용구(用具)가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만족을 통해서 얻어진다.

성경 구약에 축복은 순경(順境)이고 주의해야하고 악덕을 가장 잘 알아챈다. 신약성서의 축복은 역경(逆境)인데 인내다. 그리고 미덕을 가장 잘 알아챈다. 그리고 항상 천재(天才)를 드러내고 감추는 것은 번영(繁榮)이다. 그 몸의 주의가 모두 약()이 되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절조(節操)와 행실을 닦게끔 되는 것이 역경이다. 눈앞이 모두 칼과 창 같아서 기름을 녹이고 뼈를 깎아도 알지 못하는 것은 순경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 속에서 살고 그리고 죽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고통의 지불이 없이는 어느 것도 시작이 없다. 전장(戰場)의 피()에서 싹트는 제비꽃같이 그리고 굳어진 발굽을 가진 짐승은 어떠한 길도 걸을 수 있다. ()이 그의 은총(恩寵)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보내는 작은 마찰(摩擦)들을 갖게끔 한다. 방향 감각을 잃고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인생, 클릭과 클릭으로 연경되는 세상, 기계와 부호로 버무려지는 인간 부재의 냉혹한 현실의 존재성과 무정스러운 접촉 그리고 잊혀져가는 다감한 접촉의 인생들은 부딪힌다. 존재의 명제와 합법적 의사 방해 필리부스터, 성공에 관한 자기 계발서(啓發誓)가 뫼비우스 띠처럼 세상에 쏟아진다. 최종적 불가역적(不可逆的) 인간가치 부과로 헌법상의 권리장전(權利章典)이 자살조항(自殺條項)이 아니길 바란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어야하는데 이상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는 본성은 화()와 치욕이 엉덩이 위에 올라 앉아있으면 자존심이 안장에 앉아 가난한 자의 자존심으로 악마는 그의 꼬리를 닦는다. 야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 세력 증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 모든 야심이 합법적인 것은 인간의 재앙이나 경신(輕信) 위에서 솟아나는 야심을 제외한 것이기에 미래에 대한 절망도 과거에 대한 고발도 아닌 것은 사실 그대로 표명한다는 것이다. 텅 빈 하늘 속에 태양이 위치하듯 자리 잡아야 한다. 낮과 밤을 지배하는 창공의 빛처럼 균형을 잡고 자신의 정직은 종교와 정책에 기초하지 말고 자신의 종교와 정책이 정직에 기초해야 한다. 하지만 거짓말의 차이가 고양이는 아홉 개의 목숨밖에 갖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고양이와 거짓말의 차이점이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도 말고 바꾸지도 말면 좋은 길이고 정해진 이치인 것이 중용(中庸)이다.

사실을 깨달은 물에 달()이 비치지만 달()은 젖지 않는다. 그리고 물은 깨지지 않는다는 깨우침으로도 생각이 되지만 너그러운 감화력(感化力)이 영혼위에 내려와 감동을 일으킨다. 마음은 어떻게 해서 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감동을 사고(思考)로 바꾸는데 모든 욕망을 추구하는 것에서와 같다. 그리고 그 자체가 만족을 주게 된다. 하지만 위험이 지났다고 해서, 위험이 닥쳤다고 해서 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큰 사연의 압력 가운데서는 일반적인 원리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번영을 환영받으려면 역경을 맛보아야하니까. 극히 작은 분초(分秒)가 영원의 거대한 시대(時代)가 된다. 성경에 구약과 신약의 누가복음 16: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했다. 인간만이 소중히 여기는 보석이 무엇일까 그것은 일관성(一貫性)을 꼽고 있다. 그것은 진보(進步)대신 열()을 발생 시키는 것이 일관성의 반복인 까닭이다. 끝없는 틀에 박힌 상식에 착념치 말 것은 이런 것은 세상 이치 밖에 있는 신앙의 경륜을 이름보다 도리어 변론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는 양심과 사랑의 확증 요소를 깨닫지 못하는 경근을 모른다. 철학과 세상의 학문과 의문(儀文)에 쓴 증서를 도말하고 우리가 폄론(貶論)하지 못하게 세상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Tags :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쓰기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